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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조예군’은 왜 평양에 묻혔을까?Why Was the Ye Lord of Bujo Buried in Pyeongyang?

Other Titles
Why Was the Ye Lord of Bujo Buried in Pyeongyang?
Authors
장병진
Issue Date
Dec-2025
Publisher
한국역사연구회
Keywords
부조예군; 옥저; 부조현; 창해군; 현도군; 낙랑군; the Ye lord of Bujo(夫組薉君); Okjeo(沃沮); Bujo County(夫租縣); Changhae Commandery(蒼海郡); Hyundo Commandery(玄菟郡); Nakrang; Commandery(樂浪郡)
Citation
역사와 현실, no.138, pp 229 - 259
Pages
31
Indexed
KCI
Journal Title
역사와 현실
Number
138
Start Page
229
End Page
259
URI
https://scholarworks.gnu.ac.kr/handle/sw.gnu/82007
Abstract
정백동 1호분에서 출토된 ‘부조예군’ 은인은 옥저 읍락의 군장이 왜 자신의 근거지인 옥저(부조)가 아니라 평양 낙랑구역에 묻혔는가라는 문제를 제기한다. 이 물음은 옥저가 현도군에서 낙랑군으로 이속되는 과정에서 토착 지배층의 지위가 재조정되고, 군현 통치 방식이 변화한 맥락 속에서 이해될 수 있다. 현도군 관할 하의 옥저는 군현 체제에 편입되었음에도 부조예군과 같은 토착 군장이 일정한 자율성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진번·임둔군의 폐지와 영동 7현의 낙랑군 이속으로 이어진 군현 재편은 이러한 토착 군장의 세력 기반을 제약하고 직접 통제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전개되었다. 이 과정에서 옥저 읍락은 현성 예하의 향리로 재편되었다. 부조예군은 이러한 전환기적 상황 속에서 지위와 권한이 재편된 인물로 보이며, 옥저가 아닌 조선현 인근에 매장된 사실은 독자적 세력 기반으로부터의 분리와 군현 내 편호된 존재로의 전환을 시사한다. 정백동 1호분은 창해군·현도군·낙랑군으로 이어진 옥저 지역에서의 군현 재편 과정에서 한(漢)이 토착 군장을 군현 질서 속으로 흡수해 간 방식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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