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명학의 형성에 미친 三足堂 金大有의 영향The Impact of Kim Dae-yu on the Formarion of Nammyeong Study
- Other Titles
- The Impact of Kim Dae-yu on the Formarion of Nammyeong Study
- Authors
- 김경수
- Issue Date
- Dec-2024
- Keywords
- Nammyung; Kim Dae-yu; noble scholar; civil servants and non-public officials; hero.; 남명; 김대유; 고사(高士); 출처; 영웅.
- Citation
- 우계학보, no.47, pp 55 - 88
- Pages
- 34
- Indexed
- KCI
KCICANDI
- Journal Title
- 우계학보
- Number
- 47
- Start Page
- 55
- End Page
- 88
- URI
- https://scholarworks.gnu.ac.kr/handle/sw.gnu/78552
- ISSN
- 2713-7880
- Abstract
- 1561년에 퇴계는 남명을 남쪽지방에서 유일한 고상한 선비라고 평가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평가는 남명을 칭찬하는 뜻이 아니라 벼슬에 나가지 않고 재야에서 자신의 지조만 지키는 선비라고 비판하는 말이다. 그 이전에 낙동강 중하류 연안에는 몇몇의 이와 같은 선비들이 독특한 학풍을 형성하고 있었는데, 모두 세상을 떠나고 오직 남명만 살아 있었기 때문이다. 남명은 원래 이곳이 삶의 터전이 아니었지만 30세 이후 처가가 있는 이곳에서 강학을 하면서 그들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 그 중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삼족당(三足堂) 김대유(金大有)였다. 남명과 삼족당은 21년의 나이 차이가 있었지만 벗으로 지냈다.
남명은 삼족당을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선비’, ‘하나의 허물도 없는 인물’, ‘세상을 뒤덮을만한 영웅’이라고 칭찬하였다. 그리고 그를 ‘왕도정치를 도울 수 있는 인재’이지만 ‘시대와 그를 알아주는 임금을 만나지 못한 사람’이라고 안타까워하였다. 그렇지만 삼족당은 세상을 원망하지 않고 기미를 살펴서 벼슬을 포기하고 유유자적하면서 살아간 식견이 탁월한 인물이라고 평가하였다. 바로 이러한 면에서 남명은 깊은 영향을 받았고, 이로부터 그 자신의 사상을 정립하게 되었던 것이다. 남명이 삼족당의 묘갈에서 그를 평가한 내용은 나중에 남명이 죽은 후에 대곡 성운이 남명의 묘갈에서 남명을 평가한 내용과 거의 일치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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