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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인종대 국사(國史) 중찬(重撰)과 역사의식의 전환Re-compilation of National History and Transformation of the Historical Consciousness during King Injong’s Reign of Goryeo dynasty

Other Titles
Re-compilation of National History and Transformation of the Historical Consciousness during King Injong’s Reign of Goryeo dynasty
Authors
윤경진
Issue Date
Sep-2024
Publisher
한국사연구회
Keywords
舊三國史; 三國史記; 高句麗; 平壤; 弓裔; 王曆; Gu-Samguksa(舊三國史); Samguksagi(三國史記); Goguryeo(高句 麗); Pyeongyang(平壤); Gung-ye(弓裔); Wangleok(王曆)
Citation
한국사연구, no.206, pp 149 - 193
Pages
45
Indexed
KCI
Journal Title
한국사연구
Number
206
Start Page
149
End Page
193
URI
https://scholarworks.gnu.ac.kr/handle/sw.gnu/78422
DOI
10.31791/JKH.2024.9.206.149
ISSN
1226-296X
Abstract
이 연구는 고려 인종대 『삼국사기』가 편찬되는 배경과 의미를 역사의식의 전환이라는 관점에서 알아본 것이다. 『삼국사기』 편찬은 기존 『구삼국사』를 대체하는 “국사(國史)의 중찬(重撰)”이었다. 이는 자신의 역사에 대한 재인식에 따른 것으로, 그 핵심은 고구려와 고려를 역사적으로 분리하는 데 있었다. 『구삼국사』에서 고구려는 ‘고려’로 지칭되며 자신과 하나의 왕조로 간주되었고, 궁예는 창업주로 인정받아 본기에 실렸다. 왕건은 즉위 후 궁예를 전주(前主)로 인정하며 사업의 계승을 천명하였다. 『삼국유사』 왕력의 ‘후고려’ 항목에서 궁예와 후삼국통일까지 태조 치세를 포괄한 것은 이러한 역사의식을 반영한다. 반면 ‘태봉’ 국호를 배제한 것은 왕건의 반역 혐의를 숨기기 위한 것이다. 이에 대해 『삼국사기』는 궁예를 고려의 역사에서 배제하였고, 국왕으로서 위상도 부정하여 열전으로 처리하였다. 궁예의 ‘고려’ 국호 제정을 삭제하고 연표에서 태조의 치세를 제외하였다. 아울러 구도(舊都)로서 평양의 역사도 희석하였다. 궁예가 처음 철원에 도읍한 사적을 삭제하여 왕건과 궁예를 공간적으로 구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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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on, Kyeong J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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