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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중기 고구려계승의식의 변화와 ‘句高麗’A change in the consciousness of succeeding Goguryeo(高句麗繼承意識) during the middle period of the Goryeo dynasty and 'Gugoryeo(句高麗)'

Other Titles
A change in the consciousness of succeeding Goguryeo(高句麗繼承意識) during the middle period of the Goryeo dynasty and 'Gugoryeo(句高麗)'
Authors
윤경진
Issue Date
2020
Publisher
역사실학회
Keywords
consciousness of succeeding Goguryeo(高句麗繼承意識); Former Goryeo(前高麗); Later Goryeo(後高麗); Gugoryeo(句高麗); the ' Three Hans were One' notion(三韓一統意識); 고구려계승의식. 前高麗; 後高麗; 句高麗; 삼한일통의식
Citation
역사와 실학, no.72, pp.71 - 111
Indexed
KCI
Journal Title
역사와 실학
Number
72
Start Page
71
End Page
111
URI
https://scholarworks.bwise.kr/gnu/handle/sw.gnu/7662
ISSN
1976-1023
Abstract
이 연구는 고려중기에 고구려를 가리키는 새로운 국호로 ‘句高麗’가 출현하는 배경과 의미에 대해 살펴본 것이다. 고려는 고구려와 자신을 일체로 인식했으며, 시간 선후에 따라 ‘前高麗’와 ‘後高麗’로 구분하였다. 이에 대해 ‘구고려’는 고구려계승의식을 유지하면서도 별개의 나라로 인식하는 변화를 반영한다. 이러한 변화가 나타난 가장 큰 이유는 고려의 영토가 압록강으로 제한된 것이다. 고려는 거란에 사대를 받아들이는 대신 압록강 동쪽 지역에 대한 권리를 인정받았다. 그런데 이것은 거란이 내려준다는 명분에 따른 것이었다. 이에 고려는 요동 중심의 고구려와 압록강 동쪽의 고려 자신을 구분하게 되었다. 그리고 고유 영토를 규정하는 역사적 준거로서 고구려 대신 箕子의 分封을 채용하였다. 또한 숙종 때 南京을 설치하면서 삼한일통의식이 강화되었다. 이전에는 고구려의 연장인 고려가 신라와 결합하여 삼한의 일통을 이루었다고 생각하였다. 그런데 이후 고구려는 고려의 출발을 표상할 뿐이며 삼한의 일통은 신라를 배제하고 온전히 고려에 의해 달성된 것으로 이해하였다. 이로 인해 고구려와 고려의 구분도 뚜렷해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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