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論介의 投身處 晉州 義巖 기록의 재검토A Review on Jinju(晉州) Uiam(義巖), the Place where Nongae(論介) Dropped

Other Titles
A Review on Jinju(晉州) Uiam(義巖), the Place where Nongae(論介) Dropped
Authors
김세호신재열
Issue Date
Dec-2024
Publisher
경북대학교 영남문화연구원
Keywords
柳夢寅; 義妓巖; 晉州城; 矗石樓; 毛谷村六助; Ryu Mong-in(柳夢寅); Uigiam(義妓巖); Jinju Castle(晉州城); Chokseokru(矗石樓); Kejamura Rochusuke(毛谷村六助)
Citation
영남학, no.91, pp 133 - 156
Pages
24
Indexed
KCI
Journal Title
영남학
Number
91
Start Page
133
End Page
156
URI
https://scholarworks.gnu.ac.kr/handle/sw.gnu/75482
DOI
10.36034/yncdoi.2024..91.133
ISSN
1738-7760
2713-8070
Abstract
晉州 義巖은 矗石樓 南江 변에 자리한 바위이다. 壬辰倭亂 당시 論介가 倭將을 끌어안고 투신한 공간으로 유명하다. 논개의 설화는 의암과 함께 변주를 거듭하며 역사적 사건으로 자리매김했다. 반면 柳夢寅은 <<於于野談>> 에서 논개의 죽음을 처음 기록했고 그 장소를 의암이 아닌 촉석루 아래 절벽으로 지목했다. 유몽인의 기록은 한편에서 꾸준히 인용되었고 의암 기록의 일면을 장식했다. 이에 이 글에서는 논개의 투신처와 관련한 각각의 기록 양상을 조명하고 아울러 이와 관련한 다양한 논의사항을 검토하고자 하였다. 논개의 설화가 변화를 거듭한 과정에는 의암의 지형적 특징이 일정 부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과거 문인들이 의암을 마주하며 논개의 고사가 실현 가능한 사건인지 고뇌한 결과의 방증이다. 왜장을 의암에 올리기 위해 논개의 유혹을 가미했고 물에 빠진 이후에는 살아날 수 없는 장치를 추가했다. 이러한 내용은 변화를 거듭하였으니 의암의 설화가 공간적 배경과 결부되어 발전하였음을 돌아보게 한다. 아울러 만약 의암이 실재한 사건이라면 그 장소는 절벽일 가능성이 보다 농후하다고 하겠다. 이 글은 설화로 전하는 하나의 역사적 사건이 공간과 결부되어 문헌기록을 통해 다양한 측면에서 이해될 수 있음을 보이고자 작성한 결과이다. 이를 보면, 일부 의암의 진실은 문헌을 통해 고증하는 데 불가능한 측면이 존재한다. 물론 이러한 의문점을 해소할 수 있는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의암 사건의 현실적 가능성과 글자의 각자 시기 검증 등은 다른 학문 분야와의 협업으로 문제를 해결해 나아갈 수 있다. 다양한 학계의 참여를 통해 이상의 결과가 진주 의암의 진실에 다가서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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