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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이센 중심의 국가형성과 작센의 지역화 (1806~1866)-독일의 중앙과 지역 형성과정-Process of forming centers and regions in the German Empire 1806-1866: Prussia-centered state formation and Saxony's regionalization

Other Titles
Process of forming centers and regions in the German Empire 1806-1866: Prussia-centered state formation and Saxony's regionalization
Authors
박상욱
Issue Date
Jun-2024
Publisher
서울역사편찬원
Keywords
German Empire; Customs Union; North German Federation; Prussia; Saxony; 독일제국; 관세동맹; 북독일연방 프로이센; 작센
Citation
서울과 역사, no.117, pp 240 - 280
Pages
41
Indexed
KCI
Journal Title
서울과 역사
Number
117
Start Page
240
End Page
280
URI
https://scholarworks.gnu.ac.kr/handle/sw.gnu/70933
DOI
10.22827/seoul.2024..117.007
ISSN
2466-1465
Abstract
이 논문에서 주요 분석의 대상은 1806년에서 1866년까지의 시기에 경제적 이해관계와 연관된 프로이센과 작센 두 지역 간의 전쟁과 외교의 문제점, 지역 간의 동화정책 그리고 특히 관세 문제가 분석의 대상이다. 19세기 초반 독일지역에서는 수많은 지역 국가가 존립했다. 이 지역 국가들은 근대적 의미의 민족국가와는 다르게 중세 영방국가의 특성들이 유지되고 있었다. 특히 프랑스 혁명과 나폴레옹 전쟁으로 이어지는 19세기 초 유럽의 전쟁은 독일 지역의 근대화와 더불어 중앙화를 촉진시키는 계기로 작용했다. 나폴레옹에 의하여 촉발되었던 1806년의 예나 아우어슈타트 전쟁과 1813/14년의 독일해방전쟁을 통하여 프로이센과 작센 두 개의 국가는 이웃국가의 관계에서 상호간의 영토와 주민을 점령하고 통치하는 적대관계로 악화되었으며, 이후의 중앙과 지역의 관계 형성에 단초를 제공한다. 특히 프로이센은 전쟁에서 패배하고 절치부심하며 다방면의 개혁을 추진했다. 프로이센의 개혁에는 다양한 근대화 성과가 존재했다. 이 시기 작센은 독일 산업화의 견인차 역할을 수행했고, 그 결과 비약적인 경제적 성과를 가져왔다. 이러한 특징들 중에도 ‘관세문제’는 근대화와 산업화 시대의 중요한 경제적 관계와 교류의 핵심이었다. 관세문제가 독일 지역의 영방국가가 근대화되는 과정에서 ‘중앙과 지역’이라는 새로운 구도를 형성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행사했기 때문이다. 이 관세문제의 주도권을 장악한 것은 프로이센이었다. 1818년 관세장벽 철폐정책을 통하여 유리한 고지를 확보한 프로이센은 오스트리아 제국의 영향력을 넘어서서 독일지역의 ‘새로운 중앙’으로서의 입지를 확립할 수 있었다. 특히 통과관세를 무기화한 프로이센의 주도권 팽창은 작센뿐만이 아니라, 수많은 북독일 지역 국가들의 산업화와 경제력을 무력화 할 수 있는 정도에 이르렀다. 독일지역의 ‘새로운 중앙’의 출현이었다. 1834년의 관세동맹은 결과적으로 작센에게 빛과 그림자라는 상반된 결과를 가져왔다. 수출 지향적 국가였던 작센은 프로이센의 관세정책을 통하여 경제규모가 증가하는 긍정적 측면이 있었다. 반면에 프로이센 중심의 경제구조로의 종속과 의존을 피할 수 없었다는 부정적인 측면도 존재했다. 독일 관세동맹이 창설된 이후 프로이센은 작센을 비롯한 중소 지역 국가의 경제적, 재정적 의존성을 이용하여 독일지역의 정치적 주도권을 장악함으로써 독일지역에서의 ‘새로운 중앙’의 입지를 굳히려 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작센의 외교정책이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악화시키는 방향으로 작용했다. 즉 외교의 방향을 오스트리아의 독일연방으로 고집했던 것은 시대의 상황인식이 부족했던 결정이었다. 왜냐하면 작센은 이미 프로이센과 경제적으로 밀접하게 얽혀 있어서 현실적으로 프로이센과의 경제적 협착관계를 벗어 날 수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이 결정은 외교 정책 답지 않게 유연하지도 못했다. 여기에는 작센이 프로이센에 대한 뿌리 깊은 반감 그리고 프로이센의 지역이 아닌 주권국가로서 위상을 유지시키고자 하는 완고한 의지가 작용했다. 경제적 이해관계와 연관된 전쟁과 외교의 문제점, 지역 간의 동화정책 그리고 특히 관세 문제는 프로이센에게 독일 지역의 ‘중앙’으로 이후 1871년의 독일제국 건설을 위한 기반을, 작센에게는 간섭과 통제를 받는 지역으로의 강압적인 입지가 마련되었다. 특히 프로이센이 주도했던 관세동맹은 작센뿐만이 아니라 독일 영내의 다른 지역들에게 무역장벽을 해체하고 시장을 확대하였으며, 산업발전과 기업 활동을 위한 중요한 토대였다. 관세동맹은 독일 지역에 이전에 없었던 ‘중앙’으로서의 프로이센과 ‘지역’으로서 작센이라는 새로운 구도를 확립하는 의미를 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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