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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8세기 南海 錦山에 대한 名勝 인식의 형성과 특징Formation and characteristics of the scenic spot recognition of Namhae(南海) Geumsan(錦山) in the 17th and 18th centuries

Other Titles
Formation and characteristics of the scenic spot recognition of Namhae(南海) Geumsan(錦山) in the 17th and 18th centuries
Authors
오세현
Issue Date
Dec-2023
Publisher
한국한문학회
Keywords
錦山; 명승; 南海島; 露梁; 忠烈祠; Geumsan(錦山); scenic spot; Namhae Island(南海島); Noryang(露梁); Chungryeolsa(忠烈祠)
Citation
한국한문학연구, no.89, pp 49 - 91
Pages
43
Indexed
KCI
Journal Title
한국한문학연구
Number
89
Start Page
49
End Page
91
URI
https://scholarworks.gnu.ac.kr/handle/sw.gnu/69621
DOI
10.30527/klcc..89.202312.002
ISSN
1228-128X
2733-4910
Abstract
南海 錦山이 지닌 명승으로서의 가치는 금산을 유람했던 사람들이 남긴 시문에 의해 구체화 될 수 있는데, 금산 유람의 기록은 17세기 이후 등장하기 시작한다. 조선 전기 금산을 유람한 기록이 없는 것은 금산과 南海島의 역사지리적 특징 때문이다. 남해 금산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금산을 陸路의 끝이라는 시각에서 벗어나 海路의 시작이라는 새로운 관점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여말선초부터 지속되었던 倭寇의 빈번한 침입으로 인해 조선 전기 남해 금산에 대해서는 유람의 대상인 명승이 아니라 關防을 위한 요충지이자 동시에 국방의 주요 자원인 말을 기르는 최적의 목장지라는 인식이 강했다. 임진왜란 이후 統制營이 건설되고 남해안에 평화와 안정이 깃들면서 금산은 비로소 명승의 대상지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금산 유람의 주요한 특징으로는 금산이 지닌 자연경관으로서의 奇巖과 일망무제의 바다 조망이 결합된 勝景, 이순신 장군이 순절한 露梁과 노량에 건립된 이순신의 사당 忠烈祠 참배로 시작되는 역사문화 체험의 여정이었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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