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세기 결혼의 교회화: De Divortio Lotharii regis et Theutbergae reginae를 중심으로The churchifying of marriage in the 9th century: De Divortio Lotharii regis et Theutbergae reginae
- Other Titles
- The churchifying of marriage in the 9th century: De Divortio Lotharii regis et Theutbergae reginae
- Authors
- 이정민
- Issue Date
- Dec-2023
- Publisher
- 한국세계문화사학회
- Keywords
- 로타리우스 2세; 테우트베르가; 신명재판; 잉크마르; 살리프랑크부족법; Lotharius II; Theutberga; ordeal; Hincmar; Lex Salica
- Citation
- 세계 역사와 문화 연구, no.69, pp 121 - 141
- Pages
- 21
- Indexed
- KCI
- Journal Title
- 세계 역사와 문화 연구
- Number
- 69
- Start Page
- 121
- End Page
- 141
- URI
- https://scholarworks.gnu.ac.kr/handle/sw.gnu/69617
- ISSN
- 1598-2823
- Abstract
- 9세기 말 카롤루스 마그누스(Carolus Magnus)의 프랑크 왕국은 크게 4개의 왕국으로 분할되었고 형제공동통치(confraternitas)라는 명분과 그리스도교적 세계관을 갖추며 안정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자신의 왕국을 더욱 확장하고자 하는 시도와 갈등의 불씨는 그대로 남아 있었다. 특히 동·서프랑크를 양쪽으로 맞대고 있는 로타링기아(Lotharingia) 왕국의 로타리우스(Lotharius) 2세는 삼촌들에 대한 정치적·군사적 긴장감을 떨칠 수 없었다. 게다가 로타리우스 2세에게는 맏형 이탈리아의 황제 루도비쿠스(Ludovicus) 2세와 동생 카롤루스(Carolus de Provinciae) 2세 역시 긴장과 경계의 대상이었다. 이에 로타리우스 2세는 로타링기아 왕국의 남쪽을 확장할 전략적 선택으로 정략결혼을 감행하게 된다. 855년 로타리우스 2세는 자신의 연인 발트라다(Waldrada)를 포기하고 로타링기아 왕국 남부에 토지와 대수도원들을 소유한 강력한 정치 세력이었던 대 보소(Boso the Elder)의 딸 테우트베르가(Theutberga)와 정략결혼을 감행했다. 불행하게도 황제 로타리우스 2세의 정략결혼은 850년대와 860년대 카롤링거 왕조의 주요 정치적 쟁점을 보여주는 이혼으로 결말짓는다. 이 논문에서는 9세기 말 카롤링거 왕조의 정치적 쟁점을 폭발적으로 드러내는 로타리우스 2세의 결혼과 이혼이 가지는 정치사적 의미를 되짚어 본다. 843년 베르됭 조약(la traité de Verdun) 이후 이어지는 분할 상속으로 치열해진 프랑크 왕들의 치열한 영토 확장과 정치적 갈등 속에서 로타링기아 왕국의 도약을 시도한 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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