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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우의 性師心弟說에 대한 한주학파와 간재학파 간의 논쟁 일고A Study of the Debate between the Hanju and Gangae School on the Theory of SeongSaSimeJe Sincerity(性師心弟說)

Other Titles
A Study of the Debate between the Hanju and Gangae School on the Theory of SeongSaSimeJe Sincerity(性師心弟說)
Authors
김종진
Issue Date
Aug-2023
Publisher
경상국립대학교 경남문화연구원
Keywords
성사심제설; 심즉리설; 전우; 이진상; 곽종석; 김황; ‘the Theory of SeongSaSimeJe Sincerity(性師心弟說)’; Jeonwoo(田愚); Lee Jin-sang(李震相); Kwak Jong-seok(郭鍾錫); Kim Hwang(金榥)
Citation
南冥學硏究, no.78, pp 121 - 172
Pages
52
Indexed
KCI
Journal Title
南冥學硏究
Number
78
Start Page
121
End Page
172
URI
https://scholarworks.gnu.ac.kr/handle/sw.gnu/67754
ISSN
1226-8925
2713-7767
Abstract
이 논문은 일제강점기 초에 성립된 艮齋 田愚의 성사심제설에 대해 영남의 한주학파와 호남의 간재학파 간의 논쟁을 종합적 시각으로 평가해 본 것이다. 간재가 寒洲 李震相의 心卽理說을 비판하면서 자신의 性師心弟說을 제시하였고, 이에 한주학파의 비판을 받자 간재학파가 되받아 비판하면서 영호남 학파 간에 긴 논쟁이 이어졌다. 그동안 심즉리설과 성사심제설을 포함한 理氣心性論에 관한 선행 연구는 광범위하게 다루어졌는데, 대체로 분석적 시각으로 파고들어, 각자의 주장에서 특색과 다른 점을 규명한 것으로서 의미 있는 연구 성과들이었다. 여기서는 그 중 성사심제설에 관련하여 후기 영호남 성리학의 양대 학맥인 한주학파와 간재학파의 논쟁에 초점을 맞추어 당대의 두 지역을 대표하는 학파가 국난의 현실 속에서 벌인 철학적 논쟁의 의미와 상호 입장을 면밀히 살펴보았다. 그리고 간재학파가 노사학파와 함께 경상우도에 뿌리 내린 호남의 학맥으로서 한주학파와의 인적 교류 속에 학문의 공통점이 어느 정도였던 지도 살펴보았다. 즉, 논쟁의 대척점 뒤편에 가려진 이론의 공통분모에서 양 학파의 학문적 소통과 융합의 가능성도 점검해 본 것이다. 우선 학파 간에 기본적으로 깔고 있는 철학적 사유가 인간의 마음을 다스려 본성을 회복하고 天命을 실현하려는 성리학의 근본 목적을 똑같이 추구한다는 것에 주목하였다. 그것은 각자가 제시하는 이론이 동일한 목표 달성을 위한 방법상의 다른 차이임을 서로 인정할 수 있어야 건전한 논쟁이 되고, 바람직한 결과를 도출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 나온 것이었다. 역사적으로 성리학은 理氣·心性을 두고 벌인 논쟁에서 그 자체는 훌륭한 철학과 교육이 되고, 사회를 바로 세우는 지남이 되었지만, 그 논쟁이 융합적이지 못하고, 분열적이며 파당적으로 흐른 문제를 안고 있었는데, 여기의 두 학파 간 논쟁도 큰 그림에서는 그 연장선에 있었음이 확인되었다. 한주학파는 간재의 성사심제설이 자신들의 간판 학설인 심즉리설의 논리를 무너뜨릴 수 있다고 판단하여 비판의 날을 세운 것 같고, 간재학파도 한주 심즉리설의 대두에 위기감을 느낀 듯한 분위기였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두 학파가 전개한 심성론에서 가장 돋보이는 성사심제설 논쟁은 미증유의 국난과 역사적 전환기에 민족의 의식을 응집하는 역할에는 부족했지만, 수 백 년간 전승되어 온 조선 성리학의 대미를 장식한 학술 논쟁이었다. 또한, 두 학설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동질의 思惟를 가진 교집합 부분이 많았고, 그로써 두 학파 간에 대립보다는 일정부분 사상적 융합도 불가능하지는 않은 것이었음도 알 수 있었다. 다만, 순수 학술적 논쟁의 너머에 학파 간의 세력상 대립과 정치적 감정적 요소도 어느 정도 작용하고 있었다. 그것은 학술적 가치가 높은 두 학파 간 논쟁이 논쟁으로 끝나고, 아무런 융합의 결말이 없었던 이유의 하나로 작용한 것 같다. 그러나 그 논쟁 과정은 어디까지나 학구적 탐색이 주된 방향이었고, 그런 와중에도 학파 간에 도를 넘는 비방은 없었다는 것도 확인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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