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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신라후기 한강 항로의 운용The Management of the Han River Route during Three Kingdoms and Late Silla

Other Titles
The Management of the Han River Route during Three Kingdoms and Late Silla
Authors
윤경진
Issue Date
2022
Publisher
역사학회
Keywords
the Han river; Danghang Castle(党項城); Namcheonjeong(南川停); Hyulgujin(穴口 鎭); Cheonghaejin(淸海鎭); Beommoon(梵文); Hansanju(漢山州); 한강; 党項城; 南川停; 穴口鎭; 淸海鎭; 梵文; 漢山州
Citation
역사학보, no.253, pp.1 - 35
Indexed
KCI
Journal Title
역사학보
Number
253
Start Page
1
End Page
35
URI
https://scholarworks.bwise.kr/gnu/handle/sw.gnu/2440
ISSN
1225-1615
Abstract
이 연구는 삼국 및 신라후기 한강 항로의 운용에 대해 살펴본 것이다. 백제는 본격적인 대중국 외교에 나서면서 도읍에 인접한 한강을 이용하여 서해로 나갔으며, 웅진으로 천도한 초기에도 이 항로를 이용하여 사신을 보낸 것으로 이해된다. 이는 한성 함락 뒤에도 백제가 한강이남을 계속 보유했음을 보여주는 한 근거이다. 6세기 중반 한강 유역에 진출한 신라는 대중국 외교에서 백제의 항로를 그대로 이용하였다. 신라의 포구인 党項城은 한강에 위치하였다. 660년 백제 공격을 위해 덕물도에 정박한 唐의 군대와 접촉하기 위해 무열왕이 南川停까지 간 것은 한강 항로를 이용하기 위한 것이었다. 신라후기에는 서해 항로를 관리하기 위해 여러 개의 鎭이 설치되었다. 이 중 강화도에 자리한 穴口鎭은 서해 연안 항로에서 신라로 진입하는 관문으로서 당초 한강 항로와 연결된 곳이며, 지정학적으로 淸海鎭과 비슷한 성격을 띠고 있었다. 여주에서 난을 일으킨 梵文이 漢山州를 공격한 것은 육로 이용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한강 항로를 이용하여 평양으로 가기 위한 것이었다. 후삼국 시기 궁예가 초기에 한강에 인접한 고을들을 차례로 차지한 것은 한강 항로를 확보하기 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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