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景文王의 통합 정책과 皇龍寺九層木塔의 改建 ― 9세기 三韓一統意識의 확립과 관련하여 ―Shilla King Gyeongmun-wang(景文王)’s Policy of Unity, and Rebuilding the Nine-storied Wooden Pagoda of the Hwang’ryong-sa temple(皇龍寺九層木塔) - Related to the Establishment of the Notion of “Three Hans becoming one(三韓一統意識)” in Ninth Century -
- Other Titles
- Shilla King Gyeongmun-wang(景文王)’s Policy of Unity, and Rebuilding the Nine-storied Wooden Pagoda of the Hwang’ryong-sa temple(皇龍寺九層木塔) - Related to the Establishment of the Notion of “Three Hans becoming one(三韓一統意識)” in Ninth Century -
- Authors
- 윤경진
- Issue Date
- 2015
- Publisher
- 고려사학회
- Keywords
- 三韓一統意識; 景文王; 元聖王; 烈祖; 皇龍寺九層木塔; the Notion of “Three Hans becoming one” (三韓一統意識); Gyeongmun- wang(景文王); Weonseong-wang(元聖王); Yedl-jo(烈祖); the Nine-storied Wooden Pagoda of the Hwang’ryong-sa temple(皇龍寺九層木塔)
- Citation
- 韓國史學報, no.61, pp 453 - 490
- Pages
- 38
- Indexed
- KCI
- Journal Title
- 韓國史學報
- Number
- 61
- Start Page
- 453
- End Page
- 490
- URI
- https://scholarworks.gnu.ac.kr/handle/sw.gnu/17826
- ISSN
- 1229-6252
2713-7945
- Abstract
- 憲安王의 사위로서 그의 지명을 받아 즉위한 景文王은 神武王 즉위와 함께 국왕의 지위를 박탈당한 閔哀王을 복권시킴으로써 元聖王系의 통합을 도모하고 文武王의 원찰인 感恩寺 행차를 통해 武烈王系까지 포용하는 지향을 보였다. 그리고 唐의 책봉을 받은 것을 계기로 재위 6년 만에 生父 啓明을 대왕으로 追封하고, 祧遷 대상이 되는 원성왕에게 烈祖 廟號를 올림으로써 不遷之主로 삼았다. 이는 원성왕의 정통 후손으로 경문왕의 지위를 확립하는 것이었다. 경문왕을 구심점으로 하는 통합의 정책은 이념적인 측면에서도 표현되었는데, 경문왕 11년 皇龍寺九層木塔의 改建은 그 산물이었다. 개건 당시에 작성된 「刹柱本記」에는 선덕여왕 때 탑의 건립이 결국 三韓의 통합으로 귀결되었고, 그것이 현 체제의 기반이 되었다고 평가하였다. 경문왕의 생부 추존은 헌안왕의 ‘아들’로서 왕위를 계승한 명분을 파기한 것이었기 때문에 이를 빌미로 연이은 모반이 발생하였다. 이에 경문왕은 문성왕대 이래 중단되어 있던 황룡사구층목탑의 개건을 재개하면서 신라의 ‘통일’을 ‘一統三韓’으로 평가하고 이를 현 사회의 통합 명분으로 삼고자 하였다. 이 점에서 황룡사구층목탑의 개건은 신라의 삼한일통의식이 체제 이념으로서 확립됨을 보여주는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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