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晉州 道統祠의 출판 활동과 그 의의open accessA Study on the Publication Activities of Dotongsa of Jinju and Their Meanings

Other Titles
A Study on the Publication Activities of Dotongsa of Jinju and Their Meanings
Authors
강정화
Issue Date
2016
Publisher
동양한문학회
Keywords
Dotongsa; publication; Confucianism; Confucius; Zhu Xi; Ahn Hyang; Gonggyohoi; 도통사; 출판; 유교; 孔子; 朱子; 安珦; 孔敎會
Citation
동양한문학연구, v.43, no.43, pp 5 - 29
Pages
25
Indexed
KCI
Journal Title
동양한문학연구
Volume
43
Number
43
Start Page
5
End Page
29
URI
https://scholarworks.gnu.ac.kr/handle/sw.gnu/16529
DOI
10.35374/dyha.43.43.201602.001
ISSN
2005-7520
2635-442X
Abstract
일제-한말 시기 유교 지식인들은 어려운 시기를 타개하기 위해 다양한 방식의 지적 활동을 전개하였다. 예컨대 대규모 지식인이 참여하여 각종 儒家書를 출간한 활동 등이 대표적이다. 이 시기 진주 도통사를 중심으로 江右 지식인들이 행한 출판 활동 또한 이의 연장선상에 있었다. 당시 이들이 찾아낸 대안은 安珦이었다. ‘孔子-朱子-安珦’으로 이어지는 ‘유학 도통의 계보’를 확립하려 했던 것이다. 이를 위해 도통사를 창립하고 『孔子編年』·『朱子年譜』·『安子年譜』 등을 출간했으며, 국내에서 이의 공신력을 확보하기 위해 중국 曲阜로 사람을 파견해 공자 후손에게서 서문을 받았다. 그 과정에 수천 명의 유림이 참여하였고, 도통사는 이 일을 계기로 중국 孔敎會 支部로서의 위상을 확보하였다. 이러한 일련의 활동은 오랜 기간 정치권에서 소외되었던 강우 지식인이 자신들의 지적 활동에 근원적 당위성을 확보하려는 당찬 기획이었고, 또한 그들이 만들어낸 새로운 기회였다. 이렇게 함으로써 자신들의 활동에 정당성과 신뢰를 부여하고, 나아가 국가적 어려움도 극복할 수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유교’에 대한 당시의 인식은 경쟁시대에 적합하지 않고 신앙력이 없어 종교로서의 기능도 불가하며, 심지어 그런 유교 국가는 정치가 부패해져서 결국 자생하지 못할 것이라고도 하였다. 이러한 시대상황 속에서 이들은 궁극적으로 유학에로의 새로운 접근을 모색하지 않았고, 그렇다고 옛 것을 고수한 것만도 아니었다. 그들은 ‘공자-주자-안향’으로의 도통을 추구하여 유학을 보위하고 나아가 자신들의 입지를 강화하면서도, 방법상에 있어서는 당시 국제질서의 변화 등을 외면하지 않으면서 문제 해결의 방안을 찾고자 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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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ng, Jeong Hwa
인문대학 (한문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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