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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여름, 포츠담: 포츠담 회담과 포츠담 선언Summer 1945, Potsdam: the Potsdam Conference and the Potsdam Declaration

Other Titles
Summer 1945, Potsdam: the Potsdam Conference and the Potsdam Declaration
Authors
신종훈
Issue Date
2016
Publisher
한국세계문화사학회
Keywords
the Potsdam Conference; the Potsdam Declaration; the Independence of Korea; World War II; the question of post-war order; 포츠담 회담; 포츠담 선언; 한국의 독립; 이차세계대전; 전후질서 문제
Citation
세계 역사와 문화 연구, no.38, pp 137 - 172
Pages
36
Indexed
KCI
Journal Title
세계 역사와 문화 연구
Number
38
Start Page
137
End Page
172
URI
https://scholarworks.gnu.ac.kr/handle/sw.gnu/16492
ISSN
1598-2823
Abstract
이 논문은 포츠담 회담과 포츠담 선언에 대한 명확한 역사적 사실을 규명하고 포츠담 선언과 한국 독립의 연관성을 분석하려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 포츠담 회담은 1945년 7월 27일부터 8월 2일까지 포츠담에서 미국, 영국, 소련의 정상들이 이차세계대전 이후 유럽의 전후질서 구축 문제를 논의한 회담이었다. 회담은 평화조약 체결 준비, 독일점령통치 및 배상문제, 폴란드 문제 등에 대한 광범위한 합의를 이끌어내었지만, 그 합의들은 참가국들의 견해 차이 때문에 미봉책의 합의 밖에 되지 못했다. 포츠담 선언은 포츠담 회담 기간 중인 1945년 7월 26일 미국, 중국, 영국의 정상들이 태평양전쟁에서 일본의 항복을 요구하는 연합국의 최후통첩이었다. 그것은 미국 정부의 주도로 준비되었다. 일본 항복의 조건들이 포츠담 선언의 핵심 내용이었다. 포츠담 선언은 포츠담 회담의 의제와는 무관한 사건이었기 때문에 두 사건은 성격이 다른 별 개의 구별된 사건으로 파악되어야 한다. 포츠담 선언의 8조에는 한국을 독립시키겠다는 국제적인 약속이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에 포츠담 선언은 한국 현대사의 중요한 문서들 가운에 하나이다. 한국 독립의 국제적 약속은 한국의 즉각적인 정부수립을 의미하지 않았고 최대 5년 정도의 신탁통치를 가정하고 있었다. 대한민국 정부수립 문제에 대한 올바른 해명을 위해서 그 문제에 대한 국제관계 맥락에서의 연구가 여전히 요구되고 있는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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