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일본의 ‘三韓’ 인식에 대한 재검토 - 신라 三韓一統意識의 성립 시기와 관련하여 -Reexamination of China and Japan’s perception of ‘Three Hans(三韓)’ - Examination of when Shilla’s notion of “Three Hans being one” was formed -
- Other Titles
- Reexamination of China and Japan’s perception of ‘Three Hans(三韓)’ - Examination of when Shilla’s notion of “Three Hans being one” was formed -
- Authors
- 윤경진
- Issue Date
- 2016
- Publisher
- 한국목간학회
- Keywords
- Samhan(‘三韓; Three Hans); the Notion of “Three Hans being one'(三韓一統意識); Dong’ih(東夷); Nakrang(樂浪); Gija(箕子); Dong’han(東韓); Nam’han(南韓); 三韓; 三韓一統意識; 東夷; 樂浪; 箕子; 日本書紀; 東韓; 南韓
- Citation
- 木簡과 文字, no.17, pp 61 - 97
- Pages
- 37
- Indexed
- KCICANDI
- Journal Title
- 木簡과 文字
- Number
- 17
- Start Page
- 61
- End Page
- 97
- URI
- https://scholarworks.gnu.ac.kr/handle/sw.gnu/15978
- ISSN
- 2005-4122
- Abstract
- 이 논문은 중국과 일본의 삼한 인식에 대한 기존의 논의들을 비판하고 새로운 각도에서 그 내용을 살 펴봄으로써 이들의 삼한 인식을 통해 7세기 신라의 삼한일통의식을 뒷받침할 수 없음을 논증한 것이다. 삼국의 통합을 당위로 인식하는 ‘一統三韓’의 이념에서 ‘三韓’은 삼국의 역사적 동질성을 통해 ‘一統’의당위를 유도하는 준거였다. 이것은 역사적 실체로서 삼한이 소멸한 후 그와 관련이 없는 고구려까지 삼한으로 지칭된 것에서 연원한다.
중국 隋唐대의 삼한 인식은 대부분 기존의 東夷를 대신하는 범칭으로 사용된 것이었다. 고구려를 삼한으로 연결하는 역사적 준거에 대해서는 樂浪郡의 한 통제나 箕子와의 연결관계를 통해 제시하기도 하지만 모두 근거가 부족하다. 삼한을 통해 삼국의 역사적 동질성을 제시한 것은 외교적 차원에서 이루어졌으며, 이것이 사회 일반으로 확산된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또한 『일본서기』에서 한은 일본이 지배하는 지역을 상징하였으며, 지역에 따라 東韓과 南韓으로 구분하기도 하였다. 이들은 각각 진한과 변한에 상응한다. 백제와 고구려까지 멸망하면서 일본은 이들까지자신의 藩國으로 간주하면서 삼한 개념을 채용하였다. 이것은 『일본서기』 단계에서 비로소 수립된 것으로 신라로부터 도입된 것으로 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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