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예종대 동북 9성 환부의 경위와 배경How the Establishment of the Nine Fortresses in the Northeast Region (동북 9성) Progressed, and Why They Were ‘Returned’ to the Jurchen
- Other Titles
- How the Establishment of the Nine Fortresses in the Northeast Region (동북 9성) Progressed, and Why They Were ‘Returned’ to the Jurchen
- Authors
- 윤경진
- Issue Date
- 2017
- Publisher
- 진단학회
- Keywords
- 동북 9성; 강동 6주; 고구려계승의식; 女眞; 契丹; nine fortresses in the northeast region (동북 9성); the six ju units of Gangdong (강동 6주); the Goryeo people’s idea of themselves as the successors of the Goguryeo dynasty (고구려계승의식); Jurchen (女眞); Khitan (契丹)
- Citation
- 진단학보, no.128, pp 1 - 28
- Pages
- 28
- Indexed
- KCICANDI
- Journal Title
- 진단학보
- Number
- 128
- Start Page
- 1
- End Page
- 28
- URI
- https://scholarworks.gnu.ac.kr/handle/sw.gnu/14564
- ISSN
- 1013-4719
- Abstract
- 이 연구는 고려 예종대 동북 9성의 환부 경위와 배경에 대해 살펴본 것이다. 고려는 9성을 개척한 지 2년 만에 이를 철거하고 그 땅을 여진에게 돌려주었다. 이렇게 단기간에 돌려준 이유는 수비의 어려움과 여진의 지속적인 환부 요청 등으로는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다. 여기에는 환부를 결정한 중요한 계기가 상정되는데 그것은 바로 거란의 입장이었다. 고려는 처음 여진과 강화 협상을 벌일 때 거란에 9성 신축을 통보하면서 해당 지역에 대한 고려의 연고권을 주장하였다. 9성 개척을 뒤늦게 알린 것은 거란의 입장을 확인하고 9성 환부 여부를 결정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런데 거란은 고려의 9성 개척에 부정적이었다. 거란의 回詔 내용을 재구성해 보면, 고려가 여진의 침구에 대응하여 정벌을 단행한 것은 수긍하지만 토지와 인구의 고려 귀속은 용인하지 않았다. 고려는 이 지역이 고구려의 舊地임을 명분으로 9성을 설치했지만, 거란은 고구려 구지에 대한 고려의 영유권을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고려의 주장에도 불구하고 강동 6주는 ‘사여’의 형식을 띠었고, 장성 이북의 압록강 이동 지역에 대한 영유권도 인정받지 못했다. 외교적 명분에서 고려의 분봉지를 고구려 구지의 관점에서 설정한 면도 보이지만, 서쪽은 현실의 경계인 압록강으로 제한되었다. 동북방의 영토 범위도 현실 문제가 되면 기존 영토 이상으로 용인하지 않았다.
결국 거란의 반대 의사를 확인한 고려는 현실 부담을 무릅쓰고 9성을 유지하기 어렵다고 판단하였고, 곧바로 9성을 돌려주게 되었다. 이 때문에 9성 개척은 ‘명분없는 전쟁’이 되었고, 그 기반이었던 고구려계승의식도 크게 퇴색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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