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壬申誓記石」의 제작 시기와 신라 중고기의 儒學 이해에 대한 재검토Time of Creation of the 「Imshin Seogi-seok (壬申誓記石, Stone of Oath carved in the Imshin-year)」 inscription, and Confucianism in the Shilla dynasty’s Middle-Ancient era
- Other Titles
- Time of Creation of the 「Imshin Seogi-seok (壬申誓記石, Stone of Oath carved in the Imshin-year)」 inscription, and Confucianism in the Shilla dynasty’s Middle-Ancient era
- Authors
- 윤경진
- Issue Date
- 2019
- Publisher
- 한국목간학회
- Keywords
- 壬申誓記石; 儒學; 强首; 五經; 文選; 讀書三品科; 金后稷; Imshin Seogi-seok(壬申誓記石; Stone of Oath carved in the Imshin-year); Confucianism(儒學); Gang Su(强首); the Five Classics(五經); Munseon(文選; generally consulted in writing practices); Dokseo Sampum-gwa(讀書三品科); Kim Hu-jik(金后稷)
- Citation
- 木簡과 文字, no.22, pp 221 - 250
- Pages
- 30
- Indexed
- KCI
- Journal Title
- 木簡과 文字
- Number
- 22
- Start Page
- 221
- End Page
- 250
- URI
- https://scholarworks.gnu.ac.kr/handle/sw.gnu/10335
- DOI
- 10.35302/wdis.2019.06.22.221
- ISSN
- 2005-4122
- Abstract
- 이 연구는 儒學 경전의 학습을 맹서한 내용이 담긴 「壬申誓記石」의 제작 시기를 새롭게 비정하고, 이를 토대로 신라 중고기의 유학 이해를 재검토한 것이다.
이 碑는 그동안 花郞의 활약기에 세워졌을 것이라는 이해에 따라 552년, 또는 612년에 제작된 것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비문에서 화랑과 관련된 단서는 찾을 수 없다. 반면 “만약 국가가 不安하거나 大亂이 있으면”이라는 구문은 이 비가 체제 안정기에 건립되었음을 보여준다. 무열왕 때 문장가로 활동한 强首가 학습한 경전은 문장 교재인 『文選』이나 기초 교양인 『孝經』 등이었다. 五經을 비롯한 경전의 본격적인 학습은 원성왕대 讀書三品科 시행 이후에 비로소 이루어졌다.
신라의 초기 유학 이해는 漢文學에 부수된 것이었다. 승려들은 중국에 유학하며 문장을 공부하였고, 그 과정에서 유학 지식도 습득하였다. 그러나 이는 세련된 문장을 위한 것일 뿐이며, 경전 학습이나 사상적 이해를 보증하지 않는다. 「眞興王巡狩碑」 등에 보이는 경전 구문은 문장을 통한 국왕의 권위 포장에 본령이 있다. 그리고 열전에 보이는 유학적 내용은 후대에 傳記를 작성하는 과정에서 가공된 것이 많다. 『老子』와 『書經』을 인용한 金后稷의 사례는 중국의 사적을 차용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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