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운천동사적비」의 건립 시기와 건립 배경 - 최근 비판에 대한 반론과 추가 판독 -Discussion of When and Why the 「Cheongju Uncheon-dong Historical Monument of Temple」 was created: In response to recent criticism
- Other Titles
- Discussion of When and Why the 「Cheongju Uncheon-dong Historical Monument of Temple」 was created: In response to recent criticism
- Authors
- 윤경진
- Issue Date
- 2019
- Publisher
- 한국사연구회
- Keywords
- Cheongju Uncheon-dong Historical Monument of Temple(청주운천동사적비); the notion of “All Three Hans are one” (三韓一統意識); Haedong Cheon'ha(海東天下); the style of letters(書體); the Sugong Era’s second year(壽拱 2년); King Gwangjong(光宗); 청주운천동사적비; 三韓一統意識; 海東天下; 書體; 壽拱 2년; 光宗
- Citation
- 한국사연구, no.186, pp 111 - 162
- Pages
- 52
- Indexed
- KCI
- Journal Title
- 한국사연구
- Number
- 186
- Start Page
- 111
- End Page
- 162
- URI
- https://scholarworks.gnu.ac.kr/handle/sw.gnu/10178
- DOI
- 10.31791/JKH.2019.09.186.111
- ISSN
- 1226-296X
- Abstract
- 이 논문은 書體를 통해 「청주운천동사적비」의 건립 시기를 비정한 견해를 반박하고, 새로운 판독을 통해 비를 세운 시기와 배경을 논한 것이다.
이 비는 그동안 7세기 신라의 三韓一統意識을 보여주는 핵심 자료였으나 근래 고려에서 건립한 것이라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그런데 비문의 서체가 古新羅風과 初唐風이 섞여 있음을 근거로 다시 7세기를 주장하는 의견이 있었다. 그러나 해당 서체는 고려초기까지도 사용되고 있었기 때문에 7세기 건립의 근거가 될 수 없다. 寺蹟碑의 건립 또한 신라말 이전으로 올라가는 예가 없다.
壽拱 2년 기사의 내용은 사찰의 草創에 대한 것이고, 비문은 이를 重創한 사적을 담고 있기 때문에 이를 근거로 비의 건립 시기를 7세기로 볼 수 없다. 또한 비문의 공간 인식은 고려의 海東天下에 부합한다.
한편 새로운 판독을 통해 이 비가 僧塔의 건립과 관련됨이 확인되는데, 승탑은 신라말에 비로소 출현한다. 사업을 지원한 王의 이름은 昭로 판독되며, 이 경우 그는 고려 光宗이 된다. 따라서 비의 건립 시기도 광종대가 되는데, 그는 충주가 외가인 연고로 해당 사업을 지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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