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의 영토의식과 삼한일통의식

Shilla’s Perception of its own Territory and the “Three Hans were One” Notion(三韓一統意識)

초록

이 연구는 신라의 삼한일통의식이 7세기의 이념이었다는 주장을 비판하고 9세기에 비로소 출현했다고 주장한 학설의 주요 내용을 종합 정리한 것이다. 신라는 백제의 영토의식을 준거로 평양 이남이 백제의 고유 영토라는 입장을 견지했다. 영토상으로 7세기 전쟁은 삼국 통일이 아니라 백제 병합인 것이다. 그동안 7세기 설의 주요 근거가 되었던 ‘청주운천동사적비’는 고려에서 만든 것이고, 태종 시호 기사와 김유신 헌의는 모두 후대의 인식이 투영된 것이다. 삼한일통의식은 9세기 김헌창의 난으로 인한 국가 분열의 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이념으로 출현하였다. 후삼국 분열 후에는 이를 다시 통합해야 한다는 역사적 당위를 제공하였고, 통일을 달성한 고려의 체제 이념으로 확고한 자리를 잡았다.

키워드

삼한일통의식청주운천동사적비평양 이남 백제 토지태종김유신.the “Three Hans were One” Notion(三韓一統意識)the Monument of Cheongju Uncheon-dong(청주운천동사적비)the southern region of Pyeong’yang had been part of the Baekje territory(평양이남 백제토지)Taejong(太宗)Kim Yu-shin(金庾信).
제목
신라의 영토의식과 삼한일통의식
제목 (타언어)
Shilla’s Perception of its own Territory and the “Three Hans were One” Notion(三韓一統意識)
저자
윤경진
DOI
10.38080/crh.2019.02.126.12
발행일
2019
저널명
역사비평
126
페이지
12 ~ 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