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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카자흐스탄 출신 파르하트 샤리포프(Фархат Шарипов) 감독의 영화 《대피(Эвакуация)》는 제2차세계대전이라는 역사적 비극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하지만 이 작품은 전쟁의 전개 양상이나 영웅적 승리에 주목하는 전통적인 전쟁 영화의 서사 문법을 거부하고 있다. 파르하트 감독은 거시적인 역사의 흐름 속에 매몰된 ‘개인의 실존’에 관심을 두고 있는 것이다. 전쟁이라는 극한적인 상황은 인간의 신체 뿐만 아니라, 정체성과 존엄, 그리고 가족까지도 파괴한다는 것이다. 영화의 제목인 전시의 ‘대피’는 단순히 안전한 곳으로의 피신 혹은 이동이 아니다. 이 작품에서 대피는 개인이 누리던 문명적 혜택과 사회적 지위가 박탈되는 과정이며, 동시에 인간이 전시 국가 시스템에 의해 통계 수치와 행정 데이터로 치환되는 소외의 과정이다. 감독은 이러한 비참한 현실을 미화하거나 서정적으로 포장하지 않는다. 그는 《보스의 비밀(Тренинг личного роста)》, 《18 킬로헤르쯔(18 Килогерц)》, 《계략(Схема)》 등의 전작에서 일관되게 탐구해 온 ‘시스템에 의해 포획된 인간’이라는 테마를 제2차 세계대전의 현장으로 확장시킨다. 본 연구의 목적은 영화 《대피》가 보여주는 전쟁의 본질을 주요 숏 분석을 통해 규명하고, 이 작품의 영화 언어가 인간 존재의 절망과 인간성의 소멸 과정을 어떻게 묘사하는지 고찰하는 데 있다. 본고가 제기하는 질문은 다음과 같다. 첫째, 흑백 영상의 미학이 어떻게 인물의 내면적 고립과 집단적 익명성을 형상화하는가? 둘째, 가방, 코트, 행정 서류와 같은 일상적 사물들이 전쟁터라는 특수한 시공간에서 어떤 의미를 지니게 되는가? 셋째, 기차역에서 유르타(Юрта)로 이어지는 공간적 전이는 문명의 해체와 실존의 문제를 어떻게 드러내는가? 마지막으로, 가족 내부에서 발생하는 갈등과 강제 이별의 비극은 어떻게 형상화되는가? 본 연구는 이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현대 카자흐스탄 영화에 나타난 역사적 비극이 여전히 동시대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는 점을 규명할 것이다.
키워드
- 제목
- 카자흐스탄 영화 《대피》 (2025) 연구
- 제목 (타언어)
- A Study on the Kazakh Film Evacuation (2025)
- 저자
- 홍상우
- 발행일
- 2026-03
- 유형
- Y
- 저널명
- 슬라브硏究
- 권
- 42
- 호
- 1
- 페이지
- 135 ~ 1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