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계(柟溪) 이중무(李重茂)의 한시 창작과 내면 의식The Poetry of Namgye Lee Jung-Mu and the Orientation of His Intellectual Consciousness
- Other Titles
- The Poetry of Namgye Lee Jung-Mu and the Orientation of His Intellectual Consciousness
- Authors
- 김세호
- Issue Date
- Dec-2025
- Publisher
- 경인교육대학교 기전문화연구소
- Keywords
- Park Yi-jang; Gyeongsejeong; Kim Goong-pil; Sohakdang; Hoesan; Seowon; 박이장(朴而章); 경세의식(經世意識); 김굉필(金宏弼); 소학당(小學堂); 회산서원(會山書院)
- Citation
- 기전문화연구, v.46, no.2, pp 129 - 145
- Pages
- 17
- Indexed
- KCI
- Journal Title
- 기전문화연구
- Volume
- 46
- Number
- 2
- Start Page
- 129
- End Page
- 145
- URI
- https://scholarworks.gnu.ac.kr/handle/sw.gnu/82143
- ISSN
- 2092-7401
- Abstract
- 이 글은 조선 중기 이중무(李重茂, 1568∼1629)가 지은 한시를 바탕으로 내면 의식 을 고찰한 결과이다. 이중무는 의령에서 태어나 자랐고 임진왜란(壬辰倭亂) 이후 외가가 위 치한 합천 숭산(崇山)으로 이주해 외삼촌 박이문(朴而文, 1544∼1598)‧박이장(朴而章, 1547∼1622) 문하에서 공부했다. 이중무는 이들의 학문적 성취와 정치적 활동을 가까이에 서 목도하며 스스로 미진한 성취를 성찰했다. 외가의 성취는 내적 기준이자 부담으로 작용 했고 이에 부응하지 못한 현실을 자조하는 모습이 표출된다. 다만 이중무의 고뇌는 단지 출 세를 지향하는 측면은 아니었다. 이중무의 한시에는 절기(節氣)‧사물(事物) 등을 제재로 삼 은 작품이 여럿 간취된다. 절기 등을 제재로 삼은 시에는 백성들을 염려하는 경세의식이 드 러나고, 사물을 두고 지은 시에는 스스로의 절의를 견지하는 일종의 신념이 나타난다. 이는 평생의 고뇌가 단지 명리를 추구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지향이 현실과 괴리된 측면이 있음 을 보여준다. 이중무는 과거를 포기하고 마침내 김굉필(金宏弼)의 유지(遺址)로 나아가 소 학당(小學堂)을 경영했다. 이를 복원하는 사업은 단순한 추모의 영역을 넘어 사림파(士林 派)의 학맥을 계승하는 의지의 구현이라 할 수 있다. 이중무는 소학당을 통해 벗들과 교유 하고 강학을 전개하며 자신만의 삶을 구가했다. 이후 소학당은 회산서원(會山書院)으로 사 액되었고 이중무는 이곳에 봉향되는 영예를 얻었다. 이러한 역사적 과정은 이중무를 사림 파의 학맥을 계승한 주목할 만한 인물로 평가해야 함을 증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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