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기~20세기 초 江右 문인들의 華陽九曲 기행과 시대 인식The Travels of Gang-u(江右) Literati to the Hwayang-gugok(華陽九曲) and Their Perception of the Times in the 18th to early 20th century
- Other Titles
- The Travels of Gang-u(江右) Literati to the Hwayang-gugok(華陽九曲) and Their Perception of the Times in the 18th to early 20th century
- Authors
- 오세현
- Issue Date
- Sep-2025
- Publisher
- 동아인문학회
- Keywords
- Gang-u(江右) Literati; Hwayang-gugok(華陽九曲); Sojunghwa (小中華); Song Si-yeol(宋時烈); Mandongmyo(萬東廟); 강우 문인; 화양구곡; 소중화; 송시열; 만동묘
- Citation
- 동아인문학, no.72, pp 161 - 195
- Pages
- 35
- Indexed
- KCI
- Journal Title
- 동아인문학
- Number
- 72
- Start Page
- 161
- End Page
- 195
- URI
- https://scholarworks.gnu.ac.kr/handle/sw.gnu/80548
- ISSN
- 1598-6888
- Abstract
- 화양구곡은 조선 후기 노론계의 정치적・학문적 권위를 상징하는 공간이 되었다. 그로 인해 전국의 노론계 문인들은 화양동과 화양구곡의 승경을 유람하며 동시에 송시열의 유적이라는 의미를 되새기며 정치적・학문적 공감대를 형성해 나갔다. 강우 지역에서도 인조반정 이후 서인계 가문들이 증가하며 강우 문인들의 화양동과 화양구곡 기행이 등장했다.
강우 문인들의 화양구곡 기행은 18세기 후반에 시작되어 20세기까지 이어졌는데, 이들은 모두 강우지역에 거주했던 노론계 가문의 문인들이었다. 초반에는 속리산을 유람하는 일정 중에 화양구곡을 기행하거나 또는 한양에 다녀오는 여정에 화양구곡을 방문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후 점차 화양구곡 자체를 대상으로 하는 기행들이 등장했다.
강우 문인들의 초기 화양구곡 유람은 존주대의와 화이론의 상징적 공간인 화양구곡에서 송시열의 유적을 체험하며 소중화라는 조선의 정체성을 체험하는 시대 인식을 보여주었다. 그것은 화양동의 승경에 대한 찬탄과 더불어 대명의리와 존주대의를 체험하는 곳이라는 장소성에 대한 공감이다. 그리고 이러한 공감대의 기전에 송시열의 유적 방문을 통해 조선이 처한 국제적 질서 속에서 문화국가로의 자부심을 표현한 소중화 의식을 다시 한번 되새기는 모습들이 강우 문인들의 화양구곡에서도 확인되고 있다. 이는 화양동을 방문했던 다른 지역의 문인들에게서도 공통적으로 확인되는 면모이다.
1910년 국권 피탈 이후 강우 문인들의 화양구곡 기행은 화양동의 승경 유람이 아니라 만동묘 향사 참여로 변모했다. 화양동 본소 방문이 쉽지 않았던 강우 문인들은 정기적인 계회를 통해 만동묘 향사를 지원하기 위한 경제적 활동을 지속했다. 그리고 일제의 침략이라는 시대적 상황 속에서 화이관과 위정척사에 기반한 강우 문인들이 국권 회복을 위한 염원의 일환으로 화양구곡을 방문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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