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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73년 플랜태저넷 반란과 알리에노르 다키텐느의 정치 전략The 1173 Plantagenet Rebellion and the Political Strategy of Eleanor of Aquitaine

Other Titles
The 1173 Plantagenet Rebellion and the Political Strategy of Eleanor of Aquitaine
Authors
이정민
Issue Date
Sep-2025
Publisher
한국서양문화사학회
Keywords
Aliénor d’Aquitaine; Louis VII; Henry II; Plantagenêt; the 2nd Crusade; 알리에노르 다키텐느; 루이 7세; 헨리 2세; 플랜태저넷; 제2차 십자군
Citation
World History and Culture, no.76, pp 143 - 165
Pages
23
Indexed
KCI
Journal Title
World History and Culture
Number
76
Start Page
143
End Page
165
URI
https://scholarworks.gnu.ac.kr/handle/sw.gnu/80547
ISSN
1598-2823
Abstract
카페(Capétiens) 왕가와 플란태저넷(Plantagenêt) 왕가의 왕비였던 알리에노르 다키텐느(Aliénor d'Aquitaine)는 결혼 무효와 재혼으로 프랑스와 잉글랜드의 정치 지형을 흔들었다. 또한 알리에노르 다키텐느는 아키텐느 공으로서 제2차 십자군 원정에 직접 참여하여 자신의 통치 권력을 공식화하였으며 동시에 푸아티에 궁정(courtois) 문화를 주도하는 인물이기도 하였다. 이른바 전형적인 서양 중세 여성상과는 확연하게 구분되는 알리에노르 다키텐느는 강력한 권력 의지를 지닌 전략가이기도 하였다. 1170년 대관식을 치루었던 젊은 왕 헨리(Henry the Young)는 자신의 통치 권력을 나누지 않으려는 아버지 헨리 2세에게 프랑스 왕 루이 7세의 지지를 받으며 1173년 3월 반란을 일으켰다. 알리에노르 아키텐느는 자신의 아들들과 함께 남편 헨리 2세에 대한 반란을 적극적으로 지원하였으나 결국 이 반란은 실패로 끝났다. 그녀는 15년 동안 정치 무대에서 사라졌으나 아들 리차드 사자심(Richard the Lionheart)왕과 함께 플랜태저넷 왕가의 중심으로 자리를 되찾게 되었다. 이 논문에서 프랑스와 잉글랜드의 역사적 갈등과 충돌의 원인을 제공한 알리에노르 다키텐느에 관한 기존의 연구 해석에서 벗어나 1173년 플랜태저넷 가문의 반란을 적극적으로 주도한 알리에노르 다키텐느의 정치 전략가의 모습과 12세기 잉글랜드와 프랑스의 정치 지형을 역사적으로 분석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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