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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의 복원과 재현 - 1960~1970년대 강릉단오굿을 중심으로 -Restoration and Reproduction of Tradition - Focusing on Gangneung Dano-gut in the 1960s and 1970s -

Other Titles
Restoration and Reproduction of Tradition - Focusing on Gangneung Dano-gut in the 1960s and 1970s -
Authors
윤동환
Issue Date
Apr-2025
Publisher
무형유산학회
Keywords
Gangneung Danoje; Danogut; tradition; intangible cultural heritage; intangible cultural heritage law; 강릉단오제; 단오굿; 전통; 무형유산; 무형유산법
Citation
Intangible Heritage Studies, v.10, no.1, pp 7 - 32
Pages
26
Indexed
KCI
Journal Title
Intangible Heritage Studies
Volume
10
Number
1
Start Page
7
End Page
32
URI
https://scholarworks.gnu.ac.kr/handle/sw.gnu/78126
ISSN
2508-3694
Abstract
일제강점기 이전 강릉단오제는 ‘단오굿(タノクッ)’으로 불렸다. 일제강점기 일인학자의 조사에서 ‘江陵端午祭’로 표기한 것을 수용하여 무형문화재 조사보고서에 반영하였고, 국가무형유산 지정 당시 한자 명칭 그대로 ‘강릉단오제’로 명명하였다. 즉 ‘강릉단오제’라는 무형유산 명칭은 식자(識者)나 일인학자가 쓴 자료를 토대로 만들어진 것이다. 무형유산은 전승 환경의 변화에 따라 그 모습을 달리한다. 1960년대 국가무형유산 지정 당시 무형유산을 바라보는 위원들은 민족문화를 발굴하고 민족예술을 계승해야 할 것과 그렇지 않은 것으로 구분하였다. 국가무형유산으로 지정하기 전에는 정형화되지 않았으나, 지정하기 위해서는 틀을 갖춰야 했다. 강릉지역 문화 인사들은 ‘문화재’ 혹은 ‘무형유산’으로서의 지위를 획득하기 위해 전통적 축제를 복원하고 중단되었던 민속예술을 복원하고자 했다. 그중에서 단오굿은 1967년 이후 자리를 잡았지만, 가면극의 경우는 그렇지 못했다. 광복 이후 단오 무렵 풍년굿으로 전승했던 단오굿은 1967년 국가무형유산 지정 전후를 계기로 모습이 달라진다. 우선 당주무가 주도했던 굿에서 보유자 중심으로 바뀌게 된다. 무형유산 보유자나 전승자는 무형유산법 범위 내에서 강릉단오굿을 주도하였고, 이를 계기로 무집단이 재편되었다. 이는 친소 관계에 따른 무집단의 구성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이후 점차 국가무형유산 강릉단오제는 보존회 중심으로 참여 무당이 고정되었고, 굿거리 역시 규격화ㆍ체계화되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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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n, Donghwan
인문대학 (민속예술무용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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