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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를 통해 본 18세기 서울 유생의 과거 응시 실태 -趙鎭宅의 『蓬壺日記』와 兪晩柱의 『欽英』을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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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c.contributor.author원창애-
dc.date.accessioned2025-05-08T02:30:15Z-
dc.date.available2025-05-08T02:30:15Z-
dc.date.issued2025-03-
dc.identifier.issn1226-5705-
dc.identifier.issn2765-5393-
dc.identifier.urihttps://scholarworks.gnu.ac.kr/handle/sw.gnu/78125-
dc.description.abstract이 연구는 18세기 서울 유생의 과거 응시 실태를 파악하기 위한 사례 연구이다. 연구 사례로 활용한 주료 자료는 18세기 서울 경화 사족이었던 趙鎭宅의 『蓬壺日記』와 兪晩柱의 『欽英』이다. 조진택의 『봉호일기』는 1757년(영조 33)부터 1795년(정조 19)까지 기록되어 있는데, 1776년 9월부터 1782년까지는 내용이 누락되어 있다. 그럼에도 조진택의 課試와 과거 응시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유만주의 『흠영』은 1775년(영조 51)부터 1787년(정조 11)까지 수록되어 있어 그의 20대 과시와 과거 응시에 대해 상세히 살필 수 있었다. 이 일기들로 18세기 서울 사학유생의 과거 응시 경향을 살필 수 있었다. 이 시기 서울 사학 유생들은 생원진사시나 문과와 같은 과거에 바로 응시하는 방법과 병행하여 각종 과시에 입격하여 과거 시험에서 우위를 점하는 방법을 17세기 때보다도 더 적극적으로 활용하였다. 조진택과 유만주의 일기는 이러한 사회 분위기를 잘 드러내 주었다. 따라서 제도적으로만 이해해 왔던 사학과시가 실제 어떻게 운영되었는지도 볼 수 있었다. 조진택의 경우를 보면, 영조 때에는 각 사학에서 1년에 4번씩의 학제가 시행되지 못한 채 사학합제가 시행되었다. 그보다 약 10년 후인 정조 연간에 사학합제에 응시한 유만주의 경우를 보면, 사학학제의 횟수가 비교적 규정대로 지켜졌다. 정조는 즉위 초 사학학제가 정해진 기간 내에 시행되도록 조처하였다. 이 때문에 여러 사학에서 합동으로 학제를 합설하는 경우가 많았다. 영조 때에도 해당 사학겸교수가 공석인 경우 다른 사학 겸교수가 대신 시험을 주관하는 경우는 간혹 있었으나, 합설이라는 방식으로 학제를 시행한 적은 없었다. 또한 사학 학제는 四學儒生의 거주지에 속한 사학에서 치르게 되어 있었으나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 그 이유는 사학의 시설이 미흡하여, 다른 사학에 가서 학제를 치르는 유생들을 규제하기가 어렵기 때문이었다. 18세기에는 주로 중학과 서학에서 사학의 학제가 치러졌다. 2~3개의 사학에서 학제를 합설할 경우에는 성균관에서 시행되기도 하였다. 유만주는 서학에서 주로 시험을 치렀지만 서학겸교수가 주관하는 서학학제에 응시한 것이 아니라 여러 사학의 시험에 고루 응시하고 있었다. 17세기 이후 승보시는 성균관 하재생을 뽑는 보궐시험이 아니라 사학유생의 과시로 활용되었다. 조진택과 유만주의 일기로 승보시의 시험방식을 확인할 수 있었다. 승보시는 두 단계로 시험이 나뉘어져 있었다. 1차 시험에서 입격한 유생에 한하여 계속 시험을 치를 기회를 주었다. 즉 1~3회까지의 시험을 1차 시험이라 하는데, 이 시험에서 한번이라도 입격해야 계속 승보시를 치를 자격이 주어졌다. 승보시나 사학합제에 입격한 이들이 자신에게 주어진 회시 직부 기회를 살려 해당 식년에 생원진사시에 입격한 경우는 약 23~26% 정도에 지나지 않았으나, 사학유생들은 계속 과시에 응시하였다. 조진택과 유만주는 부친이 생원진사시에 입격한 후 관직에 나갔다는 점에서 비슷하다. 반면 다른 점은 집안의 경제 상태였다. 조진택은 부친이 문과에 급제하기까지는 오로지 사학과시와 생원진사시에만 응시하였다. 그는 부친이 문과에 급제한 이후에야 문과에 응시하여 1773년 증광 문과에 급제하였다. 유만주는 부친이 문과에 급제하기까지 마냥 기다릴 수는 없었다. 그는 사학과시, 通坊外科로 시행되는 성균관 유생과시, 생원진사시, 비정기 문과 등에 응시하였다. 유만주는 수많은 시험에 응시하였으나 계속 낙방함으로써 자신감을 잃고 과거 응시를 포기하고 싶어했다. 그러나 부친과 아내의 바람을 저버릴 수 없어 시험을 감내하면서 살았다.-
dc.format.extent53-
dc.language한국어-
dc.language.isoKOR-
dc.publisher조선시대사학회-
dc.title일기를 통해 본 18세기 서울 유생의 과거 응시 실태 -趙鎭宅의 『蓬壺日記』와 兪晩柱의 『欽英』을 중심으로--
dc.title.alternativeApplication Realities of Confucian Scholars in Seoul for a Civil Service Examination in the 18th Century through the Analysis of Some Journals -Diaries of Mr. Jintaek Jo and Mr. Manju Yoo--
dc.typeArticle-
dc.publisher.location대한민국-
dc.identifier.bibliographicCitation조선시대사학보, no.112, pp 251 - 303-
dc.citation.title조선시대사학보-
dc.citation.number112-
dc.citation.startPage251-
dc.citation.endPage303-
dc.identifier.kciidART003192698-
dc.description.isOpenAccessN-
dc.description.journalRegisteredClasskci-
dc.subject.keywordAuthorConfucius Students of Four Schools in Seoul-
dc.subject.keywordAuthorthe United System of Examination in Seoul Four Schools-
dc.subject.keywordAuthorDirect Allowance to Apply to the Second Stage Examination-
dc.subject.keywordAuthorthe Classics and Literary Licentiate Examination-
dc.subject.keywordAuthorthe Highest Civil Service Examination Irregular-
dc.subject.keywordAuthor사학유생-
dc.subject.keywordAuthor사학합제-
dc.subject.keywordAuthor승보시-
dc.subject.keywordAuthor직부회시-
dc.subject.keywordAuthor생원진사시-
dc.subject.keywordAuthor비정기 문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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