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관료 문인들이 주거지에 투영한 자아상의 변모 양상: 임진왜란 이후~17세기 중반에 창작된 작품을 중심으로The Transformation of Self-Image Reflected in the Residences of Bureaucratic Literati in Seoul: Focusing on the Period After the Wars
- Other Titles
- The Transformation of Self-Image Reflected in the Residences of Bureaucratic Literati in Seoul: Focusing on the Period After the Wars
- Authors
- 강수진
- Issue Date
- Dec-2024
- Keywords
- Seoul; Bureaucratic literati; 17th century; Residence; Wartime Chaos; 서울; 관료 문인; 17세기; 주거지; 전란
- Citation
- 민족문학사연구, no.86, pp 37 - 67
- Pages
- 31
- Indexed
- KCI
- Journal Title
- 민족문학사연구
- Number
- 86
- Start Page
- 37
- End Page
- 67
- URI
- https://scholarworks.gnu.ac.kr/handle/sw.gnu/75612
- DOI
- 10.23296/minmun.2024..86.37
- ISSN
- 1227-0962
2713-7996
- Abstract
- 본고에서는 전란 이후 서울의 문인들이 주거지를 통해 드러낸 자아상을 분석하여, 그들이 추구하는 자아상이 변화한 양상을 살펴보았다. 서울은 관료 문인들이 다수 거주하던 곳으로, 이들은 주거지를 산림의 공간으로 만들어 관료로서의 삶과 처사로서의 삶이 균형을 이루는, 즉 출처(出處)가 조화를 이루는 삶을 실현하고자 하였다. 이러한 현상은 조선 중기까지 이어져 왔으나, 임진왜란으로 서울이 폐허가 되면서 관료 문인들이 주거지에 투영하는 자아상에도 일부 변화가 나타난다. 본고에서는 이에 주목하여 16세기 말~17세기 중반에 서울의 관료 출신 문인들의 주거지를 대상으로 창작된 작품을 살펴보고, 이를 통해 그들이 당시 주거지에 투영한 자아상을 밝히고자 하였다.
임진왜란 이후 서울의 관료 문인들이 주거지에 투영한 자아상을 3가지로 정리할 수 있는데, 첫 번째는 벼슬에서 물러난 상황에서 다시금 출사하고자 하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이에 대한 예로 윤두수의 애산당(愛山堂)과 박공(朴公)의 만향당(晩香堂)을 들 수 있다. 이들은 집의 이름을 통해 만년에 관직에서 물러난 상황에서 다시 관직에 나아가고자 하는 의지를 표현하였다. 두 번째는 집의 이름을 통해 정치적 혼란기에 처세하는 방식을 드러낸 것으로, 이에 대한 예로 신식의 용졸헌(用拙軒)을 들 수 있다. 그는 선조가 자신을 부정적으로 평가한 말인 ‘졸(拙)’을 이용하여 집의 이름을 짓고, 이를 통해 혼란스러운 시기에 처세하는 방법을 나타냈다. 세 번째는 출사할 가능성이 없는 인물들이 도성 주변에 집을 짓고, 그곳을 속세와 단절된 공간으로 표현한 것이다. 이에 해당하는 것은 허진의 동암(東庵)과 유정량의 소한당(素閒堂)이다. 이는 앞서서 나온 2가지 유형과는 구별되는데, 외부의 상황을 회피하는 방법으로 사회・정치적으로 혼란스러운 시기를 극복하겠다는 뜻을 드러낸 것이다. 이처럼 전란 이후에 서울의 관료 문인들은 관념적으로 추구했던 자아상에서 벗어나, 당시 혼란스러운 현실에 대응하는 자아상을 자신들의 주거 공간에 투영하였음을 파악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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