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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丹陽 舍人巖에 살았던 사람들People who lived in Sainam(舍人巖) in Danyang(丹陽) in the late Joseon Dynasty

Other Titles
People who lived in Sainam(舍人巖) in Danyang(丹陽) in the late Joseon Dynasty
Authors
김세호
Issue Date
Jun-2023
Publisher
근역한문학회
Keywords
Im Su-Gan(任守幹); Gaehwangjeong(開荒亭); Lee Yun-Yeong(李胤永); Sebyeokseong (棲碧亭); Kim Sang-Muk(金尙默); Jeong Ji-Geom(鄭志儉); Oh Dae-Ik(吳大益); Jinuiam(振衣菴); Seongssibyeoleob(成氏別業); Cheongumjeong(淸音亭); 任守幹; 開荒亭; 李胤永; 棲碧亭; 金尙默; 鄭志儉; 吳大益; 振衣菴; 成氏別業; 淸音亭
Citation
한문학논집(漢文學論集), v.65, pp 81 - 102
Pages
22
Indexed
KCI
Journal Title
한문학논집(漢文學論集)
Volume
65
Start Page
81
End Page
102
URI
https://scholarworks.gnu.ac.kr/handle/sw.gnu/72304
ISSN
1225-1313
2713-9905
Abstract
舍人巖은 충청북도 단양군 대강면 사인암리에 자리한 丹陽의 대표적인 名勝이다. 조선 후기 四郡 유람의 대표적인 공간으로 많은 시문이 전하고 可居處의 특징에 주목한 기록들이 다수 확인된다. 조선 후기 이곳에 별서를 경영하고 살았던 이들의 자취가 여럿 보이니 이와 관련한 문화사에 주목하는 것은 의미가 없지 않다. 이에 이 글에서는 사인암 관련 문헌을 바탕으로 이곳에 살았던 사람들의 자취를 알아보았다. 사인암의 유래를 간략하게 살펴보고 시대별로 변화하는 寓居의 양상을 밝혀 사인암이 지닌 또 다른 문화사를 조명하고자 하였다. 사인암은 오늘날 禹倬의 공간으로 알려져 있지만 이는 사인암이 조선 후기 명승으로 발돋움하며 지역 내에 떠도는 전설을 통해 정립된 고사로 추정된다. 任守幹은 처음 사인암에 사람의 자취를 들인 인물이다. 1716년(숙종 42) 단양군수로 부임해 開荒亭이란 서당을 건립하여 문화사를 개창했다. 18세기에는 李胤永이 棲碧亭을 세워 별서 문화를 주도했다. 尹鳳九 등도 이에 발맞춰 별서를 계획한 면모가 나타나고, 개황정은 金尙默, 鄭志儉, 吳大益 등을 거쳐 振衣菴으로 명맥을 계승했다. 19세기에는 成肯柱의 淸音亭과 成退黙의 是憂堂이 들어섰다. 성씨별업은 근대까지 사인암의 주인으로 자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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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 Se Ho
인문대학 (한문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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