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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睟光(1563~1628)과 鄭經世(1563~1633)의 道文論과 사상적 차이The Domunron(道文論) and Ideological differencebetween Yi Soo-gwang(李睟光, 1563~1628) and Jeong Gyeong-se(鄭經世, 1563~1633)

Other Titles
The Domunron(道文論) and Ideological differencebetween Yi Soo-gwang(李睟光, 1563~1628) and Jeong Gyeong-se(鄭經世, 1563~1633)
Authors
오세현
Issue Date
2021
Publisher
한국한문학회
Keywords
이수광; 정경세; 도문론; 채신잡록; 주희; Yi Soo-gwang(李睟光); Jeong Gyeong-se(鄭經世); Domunron(道文論); 「Chaesin-Japrok(采薪雜錄)」; Zhu-Xi(朱熹)
Citation
한국한문학연구, no.83, pp 37 - 76
Pages
40
Indexed
KCI
Journal Title
한국한문학연구
Number
83
Start Page
37
End Page
76
URI
https://scholarworks.gnu.ac.kr/handle/sw.gnu/5034
DOI
10.30527/klcc..83.202109.002
ISSN
1228-128X
2733-4910
Abstract
조선 초기 과거제 시행 과정에서 등장했던 강경이라는 경학 시험과 제술이라는 문장 시험의 힘겨루기는 문장의 사회적 역할과 가치관에 대한 공감대가 이미 오래전부터 지속되고 있었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문장의 사회적 역할과 가치관에 대한 공감대에 대한 문제제기가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 바로 16세기 후반과 17세기 즈음이었다. 문장가 이수광은 문장의 역할과 가치관에 대한 공감대의 지속을 대표한 인물이고, 정경세는 그러한 공감대에 문제제기를 제기한 대표적 인물이다. 이수광은 도학이 근본이고 문장은 말단이라는 도본문말론의 원칙론에 공감했지만, 동시에 문장의 실제적인 효용성과 가치에 대해서도 긍정했다. 도학과 문장의 관계에 관한 이수광의 이러한 태도는 조선 중기에 새롭게 등장한 모습이 아니라 그 이전부터 지속되어 왔던 것이다. 반면 성리학에 대한 이해의 확산과 더불어 예학이 심화되고 예서의 편찬이 활발하게 진행되었던 조선 중기에 정경세는 도학이 근본이고 문장이 말단이라는 주희의 견해를 근거로 하여 뜻을 전달하는 것으로 문장의 역할을 제한고자 했다. 정경세는 이수광의 격물치지에 대한 이해를 비판하거나, 「채신잡록」의 곳곳에 대해 양명학은 물론 노장철학과 불교와의 연관성을 제기하며 비판했다. 이러한 정경세의 비판은 문장가로 명망을 얻었던 이수광의 사상적 다양성에 대한 지적으로 이어졌다. 이러한 이수광과 정경세의 도문론과 사상적 차이는 16세기 후반과 17세기 전반의 조선 사회에서 이수광을 비롯한 다수의 문장가들에 의해 지속되었던 문장에 대한 집중과 그 집중의 연장선에서 만나게 되는 불교와 노장철학에 대한 관심과 인정, 그리고 이에 관한 정경세를 비롯한 일부 성리학자들에 의한 강력한 문제제기와 비판이라는 역사적 특징을 말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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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h, Se Hy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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