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神武-文聖王代의 정치 변동과 三韓一統意識의 출현Political Changes that occurred during the reigns of Shilla kings from Shinmu-wang(神武王) to Munseong-wang(文聖王), and the Emergence of the Notion of “Three Hans becoming One(三韓一統意識)”
- Other Titles
- Political Changes that occurred during the reigns of Shilla kings from Shinmu-wang(神武王) to Munseong-wang(文聖王), and the Emergence of the Notion of “Three Hans becoming One(三韓一統意識)”
- Authors
- 윤경진
- Issue Date
- 2015
- Publisher
- 동국대학교 WISE(와이즈)캠퍼스 신라문화연구소
- Keywords
- 三韓一統意識; 金陽; 辰韓; 聖住寺; 神武王; 文聖王; the Notion of the “Three Hans becoming One”; Kim Yang; Jinhan; Seongju-sa temple; Shinmu-wang; Munseong-wang
- Citation
- 신라문화, v.46, pp 207 - 242
- Pages
- 36
- Indexed
- KCI
- Journal Title
- 신라문화
- Volume
- 46
- Start Page
- 207
- End Page
- 242
- URI
- https://scholarworks.gnu.ac.kr/handle/sw.gnu/17919
- ISSN
- 1229-0939
2714-0628
- Abstract
- 이 연구는 신라 신무-문성왕대 무열왕계가 복권되면서 체제 통합의 이념으로서 三韓一統意識이 출현하는 양상을 검토한 것이다. 이것은 앞서 흥덕왕이 金庾信을 興武大王으로 追封하여 통합의 상징으로 활용하려 한 것에서 ‘통일’전쟁의 경험을 정치 이념으로 활용하는 단계로 나아가게 됨을 반영한다.
이러한 변화의 계기를 제공한 것은 무열왕의 후손인 金陽이었다. 그는 흥덕왕 사후 벌어진 왕위쟁탈전에서 均貞을 지원하였고, 그 아들 祐徵이 淸海鎭에 들어가자 군사를 모아 합류하였다. 그는 청해진의 군대를 이끌고 왕경을 공격하여 민애왕을 제거하고 신무왕을 옹립하였다. 이는 무열왕계가 정치적으로 복권되는 기반을 제공하였다.
반면 김양의 從父兄 金昕은 헌덕왕 때 발탁되어 민애왕 정권의 핵심이 되었다. 그는 청해진의 군대에 맞선 大昕과 동일인으로 파악되며, 패전 후 은거하다가 金式의 모반에 연루되어 처형되었다. 하지만 그의 전기에서는 사망 일시를 앞당김으로써 이를 은폐하였다.
김양은 문성왕대의 정국을 주도하며 정치적 입지를 굳혔다. 문성왕의 妃父가 되었고 연이은 모반을 제압하면서 정권 안정에 기여하였다. 이것은 무열왕의 공업으로서 ‘一統三韓’이 환기되는 전환점이 되었다. 이는 김양 사망 후 김유신의 예에 따라 賻儀하고 무열왕릉 옆에 배장하도록 한 것에서 드러난다.
문성왕대 건립된 「聖住寺碑」에서 삼한일통의식의 출현을 확인할 수 있다. 성주사는 金仁問의 受封地에 김흔의 발원으로 창건되었으며 문성왕이 寺名을 내려주었다. 김흔이 사망한 후 魏昕(金陽)이 사업을 이어받아 불전 완공과 불상 조성, 탑의 건립 등을 마무리하였다. 이 비에는 절의 연원을 백제 법왕 때의 사적으로 연결하고 당시를 ‘三韓鼎足’으로 인식하는 한편, 신라를 辰韓으로 지칭하는 등 삼한일통의식이 반영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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